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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투데이에 나온 교수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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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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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9 06:28
[라은성칼럼] 설교작성은 이렇게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신학생들은 설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떻게 설교를 작성하는지, 서론을 어떻게 시작하여 마무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아니 영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부흥사처럼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지 등등이다. 그래서 훌륭한 설교자들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모방하기 위해 분석한다.
심지어 목소리와 자태까지 흉내 내기도 한다. 좋은 설교를 통해 듣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고자 하는 마음은 목사 후보생이면 누구든 갖고 있다. 그런데 처음 설교를 하는 자들은 자신의 설교를 짧은 시간 내에 마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길게 하는 경우, 긴장하여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는 경우, 무거운 짐을 지듯이 진땀을 흘리는 경우, 침이 말라 목마르는 경우가 다 있었을 것이다. 긴장했기 때문이다.
설교 준비를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난 후 나의 설교 준비를 제안하려고 한다. 먼저 설교는 본인이 선택한 본문에서 시작한다. 아니 제목이나 주제를 생각하여 본문을 정하든지 본문을 먼저 선정하든지 간에 어떤 경우든 본문을 먼저 선택할 것이다. 한 구절이든, 한 문단이든, 아니면 한 장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본문을 정한다.
본문을 정했으면, 그것을 먼저 ‘멘트’(meant), 즉 성경저자의 뜻, 또는 본문의 당시 상황에서의 뜻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역사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배경이라고 해도 좋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왜 등 본문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찾는다. 이어서 히브리어든, 헬라어든 어원적으로 또는 문법적으로 본문을 해석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말로(paraphrasing) 풀어 써본다.
자신의 말로 쓸 때 꼭 기억할 것은 역사적, 문법적, 그리고 어원적으로 분석한 것을 되새기면서 본문의 본래의 뜻을 충실하게 써봐야 한다. 이 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영어성경이다. 본인이 분석할 것을 자신의 말로 쓰기 어렵다거나 아니면 본문을 문법적으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영어번역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이해하는 본문의 뜻을 자신의 말로 풀어 쓴다.
두 번째로 ‘미닝’(meaning), 즉 현재의 뜻을 찾는다. 이것은 본문의 뜻을, 즉 위에서 말한 ‘멘트’를 이제 현시점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올바른 적용에 앞서 인정받는 주석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본인의 해석과 주석의 해석을 비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놓쳤던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른 경우에는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ㆍ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추천할 만한 주석은 ‘매튜 헨리’(Matthew Henry) 주석이다.
그리고 주석을 찾은 후, 보다 정확한 적용을 위해 교리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본문이 어떤 교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지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리적 의미를 찾지 못하면 분명한 의미 전달이 힘들기 때문이다. 교리적 의미는 성경의 전체 맥락을 바로 짚어주며 해석적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설교가 아전인수가 될 수도 있다. 선정한 본문이 어떤 교리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기독교 강요’의 색인, 즉 성경색인을 참고하기를 제안한다.
기독교 강요만 아니라 조직신학 책들을 보면, 항상 뒷면에 성경색인이 있다. 선정한 본문이 그 성경색인에 있는지 찾아서 기독교 강요에서는 어떤 교리로 이 본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교리를 설명할 때 이 본문을 선택했는지 살피는 것이 좋다.
더욱이 교리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정확한 적용을 위해 필수적이다. 앞에서 본문의 뜻, 즉 ‘멘트’를 찾았지만 현재의 뜻, 즉 ‘미닝’을 찾아 적용을 해야 하는데 바른 적용을 위한 지침이 되거나 울타리가 되는 것은 교리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 작업이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설교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바치는 것은 설교를 하는 자들에게 필수적이다.
그런 후 적용을 위한 단계로 나아가자. 올바른 적용을 위해 행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또 다시 자신의 말로 풀어 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이다. 선정한 본문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교리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말로 표현하여 종이에, 아니면 컴퓨터에 작성하여 본다. 생각에 그치면 올바른 적용이 어렵거나 기도가 어렵다. 그래서 반드시 글로 써야만 한다. 쓴 후, 이제 기도에 시간을 바친다.
기도의 내용은 잘 적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쓴 자신의 말을 그대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턱 기억나는 적용이 떠오르거나 찬송이 떠오르면 메모해 둬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기억이 나면, 적어둬야 한다. 이렇게 하여 기도는 설교를 하나님과 자신에게 먼저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를 여러 회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 사건이나 예화가 떠오른다. 기도가 아니면 묵상이라도 좋다. 그것도 아니면 작은 목소리로 청중 앞에 있다고 하여 ‘리허설’한다고 여겨도 좋다.
그런 후, 설교는 이제 본격적으로 작성된다. 작성할 때 유의할 것은 성경을 단순히 해설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역사적 의미와 어원적 의미를 준비했지만, 설교문 작성에는 불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에게 설교를 할 때 성경의 역사적 배경같은 것을 장황하게 열거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간단한 것을 원하지 논리적이고 복잡한 설교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쉬운 설교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한 설교와 쉬운 설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단순한 설교는 어렵고 힘든 내용을 설교자가 잘 이해하여 모든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교하는 것이라면, 쉬운 설교는 농담과 우스개 소리로 준비되지 않는 설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는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신학생을 앉혀놓고 하는 성경주석이나 주해도 아니다.
물론 듣는 대중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겠지만 성경주해를 깊게 하려면 따로 성경연구반을 조성하여 실시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설교 주석이나 해석을 마치 성경강해처럼 여기는 잘못된 사고가 있는데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설교 해석을 주로 하다보면 성도들은 식상하게 되고 청취하는 성도들은 시계를 자주 보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설교의 시작, 즉 서론에서 역사적 배경을 사용하는 것보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슈’(issue)를 찾으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의 하나의 문장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를 주지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두괄식으로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답을 내리지 말고 설교의 이슈가 무엇임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질문 형식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질문 형식으로 만든 설교의 이슈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경우들을 설명한다. 소설, 일반생활, 드라마, 뉴스, 스포츠,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설교의 이슈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서론에서 밝혀줘야 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오늘의 메시지에 대한 호기심을, 즉 설교자의 설교에 대한 이해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면 가장 호기심을 가졌던 것을 간증해도 좋다. 그 호기심이 여러 가지가 되면 안된다. 반드시 한 가지로만 이뤄져야 한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성도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할 것이다.
서론에서 설교의 이슈를 다양하게 접근하여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과정에서 제안하고픈 것은 그 이슈의 답을 찾기 위해 두세 가지 질문이나 두세 가지 이슈들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슈의 답을 찾기 위한 질문들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 질문들은 곧 설교의 소제목이 될 것이다. 소제목들은 곧 본문을 구성할 것이다. 이때에 본인의 경험을 제안하고 싶은 것은 소제목마다 찬송을 하나씩 넣었으면 한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면서 설교의 내용을 하나님께와 자신에게 나타낼 때 떠오르는 찬송을 기록해 뒀다가 소제목에 삽입했으면 한다. 이렇게 마련된 찬송은 성도들로 하여금 설교를 음미하도록 할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국을 먹거나 마시는 것과 같다. 설교 후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찬송을 함께 부르면서 설교를 재음미할 것을 제안한다.
본인에게 설교하여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은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주의해야만 하는 용어는 명령어이다. ‘여러분’이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이 좋다. 예화를 들 때 당사자가 있는 경우를 피하는 것이 좋다. 설교자의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좋다. 자칫하면 성도들로 하여금 반감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의 목적은 성도들이 듣고 설교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데 있는 것이지 성경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이지 해설이 아니다. 겸손한 어투와 겸허한 용어들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평생 설교를 할 자들로서 모든 일에 있어 기도하면서 자신을 객관화시키기를 끝으로 제안한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http://eun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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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n Ra |
emtc_012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가 "크리스챤투테이"의 편집위원입니다. 그래서 늘 저의 엣세이, 즉 칼럼이 기재됩니다. 그러니까 저의 홈페이지에 있는 대부분의 칼럼이 그 신문에 기재되지요. 그리고 "교회사 학교" 역시 신문과 인터넷에 기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문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니 더욱 힘을 내어 겸손하고 겸허하게 준비하여 글을 준비하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un
![]() 2005/10/31 -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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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싸이트 링크가 잘 못되어 있는 듯 합니다. 크리스천투데이(www.chtoday.co.kr)인데 크리스챤투데이로(www.christiantoday.us)로 되어 있네요.
![]() 2005/11/09 -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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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n Ra |
emtc_005emtc_007
감사합니다.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곧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un
![]() 2005/11/09 - De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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