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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꼭 잡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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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Ra
(Homepage) |
2003-06-21 12:28:04, 조회 : 2,184, 추천 : 575 |

이 글은 2003년 6월 7일자 "크리스챤뉴스위크"에 실린 "가정칼럼"글이다.
두 손을 꼭잡고 . . .
라은성
외국에서 낯선 유학을 경험한 사람들은 가끔씩 유학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유학의 마지막 시기가 이르게 되면 누구나 느끼듯이 그동안 기나긴 세월들, 즉 힘들게 살아온 시절을 되돌아보며 겪어온 순간들을 어떻게 견디어 내었는지 또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한 숨을 지을 때가 있다. 10년 가량 외국에서의 생활은 공부하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지치게 된다. 유아시기나 어린시기의 아이들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할 정도로 커서 십대로 접어든다. 30대 출발하였던 건장한 젊음은 이제 40대 중반이 되면서 기력도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가 되면 정말 힘들고 지쳐서 제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떻게 그렇게 기나긴 세월을 지냈는지 . . . 당시에는 참 힘들었는데 어연 긴 세월을 지냈다고 하며 한숨을 짓곤 한다. 괴로운 순간을 되살리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앞으로 닥칠 새로운 일을 보며 땀을 닦으면서 전력을 가다듬어야 하는 시절은 유학의 마무리에서 누구든 느끼는 것이다.
더욱이 재정적인 문제에 가서는 말할나위도 없다. 10년이란 긴 세월이 말해주듯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삶을 지탱한다는 것은 정말 궁핍이란 단어를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늘 방안에 있는 짐들을 마음대로 풀어놓고 살지 못한다. 항상 대기 상태다. 이사갈 준비, 값싼 렌트를 찾아 이사갈 준비, 학교를 따라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늘 텐트에서 살아가는 나그네와 같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곳. . . 그래서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동료 목사님들을 자주 본다. 부부갈등을 빚는다. 가정적인 문제에 고민한다. 갖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목회에 뛰어 들기도 한다. 이유가 어쨌던 힘든 유학시기이다. 더욱이 유학생들의 사모님들도 가사일 보다는 함께 생계를 위해 뛰기 때문에 늘 심신으로 늘 지쳐있고 피곤해 있다. 아이들은 부모없는 아이들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원대로 먹이거나, 입히거나, 해주지 못한다. 마음먹은 대로 자녀들이 이웃애들처럼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할 때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 때마다 너무 힘든 나날을 지낸다. 정말 유학은 힘들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이 때마다 어떤 마음이 드는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 캄캄한 터널에 들어온 느낌을 갖는다. 막막한 광야에 있는 듯하다. 마치 쌀떨어진 쌀독을 보며 한숨짖는 주부와 같을 것이다. 또 한 가정의 가장인 동시에 자녀로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하고 걱정거리가 되는 그 자책 때문에 늘 죄송한 마음만 아니라 어떤 때는 죄책을 가질 수도 있다: “아직도 나는 부모들에게 걱정되는 불효 자식이 아닌가?” 또 몰려오는 걱정, 좌절, 그리고 자책은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 “정말 나는 목사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곳에 왔는가?” “하나님의 관심 속에 내가 있는가?” “이 과정을 마치고나면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힘들고 곤하게 잠이든 옆에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미안한 감을 느낀다. 작은 목소리를 내며 하는 말이 “남편을 잘못 만나 이런 고생하는구려 . . . 여보! 미안하오. . . .” 부드럽던 아내의 손에서 점점 굵은 마디와 까칠한 촉감을 느끼는 순간, 몰려오는 미안한 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곤 어두운 밤에 조용히 일어난다. 뒷꿈치를 들고 방문을 열고 나가서 아이들의 방으로 가서 살포시 방문을 연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자는 듯한 자녀들을 보면서 그들의 지나온 재롱들을 주마등처럼 기억해 올린다. 허리에도 오지 않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십대가 되어 어젓한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도 불평없이 견디는 자녀에게 고마움을 갖는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거실이 밝아진다. 전등이 켜지면서 “여보, 뭐해요? 지금 몇 시예요? 오늘도 밤샜어요?” 눈을 비비면서 하품을 크게 하면서 아내가 걸어나온다. “아무 것도 아니오”라고 대답하면서 일어선다. 곧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내일 아침꺼리를 준비한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 조용히 거실에 앉아 있다. 아내는 옆에 어느 샌가 앉는다. 그러면서 조용히 손을 붙잡으면서 하는 말이 “여보, 지금까지도 잘 이겨내셨어요. 이번도 잘 견딜 거예요. 나는 믿어요. 당신은 해 낼꺼예요. 당신이 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하루를 감사하면서 지내요. 내 걱정은 말아요.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한 저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우리 두 손 붙잡고 이 여행을 마무리 해요. 시작도 같이 했으니 . . . . 주님이 우리 곁에서 . . .” 두 손을 굳게 잡으면서 힘든 유학의 길에 큰 후원을 받는다.
우리의 목회도 힘들 때가 있다. 순간마다. 그 때마다 주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배우자의 격려는 무엇보다도 크게 영향을 준다. 이 글을 읽을 사모님들에게 부탁한다. 남편을 믿는 것 만큼 기다려줬으면 . . . 기도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힘든 손을 붙잡아주었으면 . . . 찬양하는 것처럼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으면 한다. 정말 이 사역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부부로 맺어주셨다.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답답할 때, 앞이 캄캄할 때, 좌절함을 가질 때, 서로 믿자, 서로 의지하자. 서로 이해하자, 서로 격려하자, 서로 위로하자, 서로 감싸주자. . . . 우리 각자는 배우자의 도움이 요청된다. 누구의 격려보다도 그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동반자이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용기를 갖고 말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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