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로마 카톨릭주의와 함께 영적 유산적 측면에서 공감하는 부분이나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이 글의 내용을 통해 그것을 느꼈으면 한다. . . .
로마 카톨릭과 복음주의자들간 "공감하는 영적 유산"이라 불릴 수 있는 많은 것이 있다. "공감"(common)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뿐만 아니라 동방정교) 모두 풍성한 전통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 단체가 가끔 다른 단체에 끼친 공헌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애용하고 있는 영적이고 헌신적인 많은 자료들의 근원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이고 도덕적 쇠퇴는 문학과 예술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복음주의 신학자 칼 헨리(Carl F. Henry)는 "우리 시대에 문학과 예술의 유감스러운 운명은 문화적 관심에 많은 이유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0세기에 기독교 관점에서 글을 쓰는 저술가들이 빈약하다고 의미하지는 않는다. 헨리는 오던(W. H. Auden), 엘리엇(T. S. Eliot), 그래함 그린(Graham Greene), 루이스(C. S. Lewis), 그리고 인정받는 기독교 저술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문학에 끼친 복음주의자들과 로마 카톨릭의 비율을 살펴볼 때 "카톨릭인들은 복음주의 신문 기고자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능가한다. 이런 통계를 통해 문화로부터 복음주의적 후퇴가 부분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적 이슈, 즉 신앙의 삶의 묵상적인 차원에 관한 양극단의 다른 측면에 대해 2차 바티칸은 로마 카톨릭인들이 개인의 헌신적 삶과 관점을 발전시켜야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경건의 덕행을 행하는 자세, 즉 사도직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화를 소유하고 평화의 내적 원천을" 반영해야만 한다. 이런 영적 발전의 중심에 "기도는 모든 묵상의 차원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사제들에게 "이따금 힘들게 사도적 헌신에 몰두하다가 하루 아니면 매주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기도의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또 개인적 기독교 형태에 중추적인 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성경 연구와 함께 하는 영적 유산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한 고통과 승리에 관련된 문학과 찬송가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리스마적 카톨릭인들이 증거 하는 것처럼 로마 카톨릭인들은 복음주의 찬송가들과 헌신적 자료를 통해 배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