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교수 교회사 커뮤니티

아이디  
비밀번호  
Auto

11월 외부 일정


10월 외부 일정


9월 외부 일정


7월 외부 일정


6월 외부 일정


441  23 8

[역사신학] (상) 마침내 출간
Eun Ra  (Homepage) 2004-12-03 01:24:44, 조회 : 2,965, 추천 : 887


윌리엄 커닝함(William Cunningham, 1805-1861) 박사는 스코틀랜드 해밀턴(Hamilton)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학자며 논쟁가였다. 그는 찰머스(Chalmers) 박사를 비롯한 훌륭한 개혁신학자들 아래서 공부했다. 그는 1830년 그린낙(Greenock)에서, 1834년 에든버러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그리고 1843년 뉴 칼리지의 교회사 교수로 1847년 찰머스 교수를 이어 학장이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커닝함은 개혁신앙을 변증하고 논쟁하는데 탁월했고 스코틀랜드 교회를 위해 눈부신 활약을 했다. 교수로서 그는 학생들에게 큰 감명을 끼쳤고, 연구에 큰 열정을 갖고 있었다. 더 나은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가서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 핫지(Hodge)교수 친분을 가졌다. 커닝함은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였다. 그가 쓴 작품들은 “칼빈과 세르베투스”(1840); “발전에 대한 뉴먼”(1845); “종파와 이단들은 종교개혁의 결과가 아니다”(1860); “성자와 형상 숭배”(1862); 그리고 “종교개혁자들과 종교개혁 신학” 등이 있다.

내용:

역사신학 연구는 학문적인 관심보다 더 심오하고 고귀한 것이다. 역사신학은 진리와 오류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또 역사신학은 우리가 현대적 감각에 맞는 옷을 입은 옛 이단들을 직면할 때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인식하도록 하고, 어느 때나 그들을 폐지하도록 하는 진리에 대한 고전적 설명을 접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설교자들은 이와 같은 연구 영역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윌리엄 커닝함(William Cunningham)은 1847년부터 186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에든버러에 있는 뉴 칼리지(New College)의 교장이었다. 그는 가장 탁월한 스코틀랜드 신학자들 중 한 분이었다. 포괄적인 그의 학문의 세계, 심오한 그의 복음주의적 통찰력, 그리고 단호하고 정확한 그의 사상적 표현을 지니고 있는 커닝함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의 초기 20년 동안 워필드(Warfield)와 칼빈이었다고 불린다.
그가 쓴 『역사신학』은 그의 걸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강의들은 커닝함 시대까지 이르는 기독교 역사의 가장 주요한 교리적 논쟁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 주의, (대부분의 자유주의의 가르침의 부모격인)소시니안주의, 그리고 알미니안주의 등이다. 커닝함의 강의들은 심오하고, 정확하고, 포괄적이고, 그리고 열정적이다.
존 맥클레오드(John Macleod) 박사는 이 작품을 평하면서 하는 말이 “이 작품은 재판석에서부터 기독교 학도들에 이르는 명료하고 섬세한 그의 주제 강연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통찰력과 포괄성을 가져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zero / icon&source by 망이보드 / editing by Kimhwa.com